꼭너여야만해/이터널선샤인(2004) #영화비평



실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시가 가슴에 박힌 듯 답답하고 둔한 괴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꾸만 기억나는 떠나간 그녀의 웃는 얼굴과 사소한 습관들. 이렇게 냄새처럼 몸에 배인 기억들 때문에 잠 못 이루고 한숨만 푹푹 쉬다가 친구들을 불러내 술 약속을 잡는다. “야, 왜 이렇게 안 잊혀질까? 죽겠다. 누가 내 머리 속에 들어와서 그 애 기억 좀 싹 다 지워줬으면 좋겠다.”


이터널 선샤인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기억 제거 사무실이 존재한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내가 자는 동안에 직원들이 방문해서는 그 사람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해준다. 다음날 아침이면 짠, 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간편한가? 실연의 수습은 돈만 내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고, 나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조금 있으면 이 사람과도 트러블이 생기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헤어져야 될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그 땐 또 서비스 기사들 불러서 싹 지우지 뭐.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미셸 공드리 감독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이유: 사랑은 그 사람에 대해 가진 좋은 기억의 총합이 아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잃어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신비한 끌림이다. 이것은 조엘의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랑했던 여인이 사무실에 의뢰해 자기의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알게된 조엘은 상처를 받고, 자기도 그녀를 지워버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도중 조엘은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기억은 하얗게 하얗게 지워진다. 지워져가는 마지막 기억 속에서, 그녀가 조엘에게 속삭인다. “몬토크 해변으로 와.” 하지만 그 말마저도 사라진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난 조엘에게는 아무 기억도 없지만, 몬토크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만난다. 모든 기억을 지워도, 다시 무언가가 그 자리로 사람을 이끌고 마는 것이다.


2. 두 번째 이유: 사랑은 대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가 있다. 이는 클레멘타인의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클레멘타인은 사랑했던 그의 기억을 제거한 후에 패트릭이라는 좀도둑 같은 남자와 사귀게 된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기억을 지운 사무실 직원이다. 패트릭은 기억을 제거할 때 클레멘타인이 제출한 물건들에서 조엘의 흔적을 엿보고는, 조엘의 복제품이 되었다. 그는 조엘이 했던 말들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클레멘타인의 호감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패트릭과의 만남이 이어질수록 클레멘타인은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그 공허감으로 울고 화도 내다가 그녀는 도망치듯 몬토크 해변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영화의 운명론을 싫어한다. 만약 사랑이 단 하나의 운명이라면, 사랑이란 안개 속에서 양쪽이 낭떠러지인 길을 걷는 것마냥 위험한 일이다. 누가 나의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르기에 누구와의 인연에서 멈춰서야 할지도 모르고, 내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해도 내가 그에게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의 안개 끝에 진정한 사랑이 맺어졌을 때 지고의 행복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치유되지 않는 상실감과 고통의 절벽으로 떨어질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 이외에는 그 빈 자리를 채워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무섭기도 한 이야기이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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