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대한 단상: 모든 것이 평평해져버린 시대 #일기

이젠 도서관을 지식의 보고라고 부르기가 참 머쓱해졌다. 검색창에 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거나 전문 저널에 기고할 게 아니라면,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중들이 사용하는 지식의 근원이 바야흐로 종이 책에서 하이퍼텍스트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종이 책이라는 매체가 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면서 생존할 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남아 자기의 자리를 지킬 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주류는 인터넷이다.

그렇게 웹이 지식이 전달되는 메인스트림이 되자,  모든 문화적인 현상이 바뀌었다. 먼저 문화 소비자들이 컨텐츠를 향유하는 순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웹 기반의 문화는 비선형적이고, 동시다발적이기 때문이다. 책이나 카세트 테이프 같은 텍스트는 한 장을 뛰어 넘어 다음 부분으로 넘어간다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불편했다. 어디까지나 본질은 앞에서 뒤로, 좌에서 우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텍스트였다. 그래서 컨텐츠 내에 정해진 대로 향유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통제권은 어디까지나 공급자에게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 카세트 플레이어 앞에 앉아서 다음 곡이 나올 때까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되는 번거로움도 없거니와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기 위해 테잎을 갈아 낄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하이퍼텍스트 시대에는 모든 것이 풀밭의 방아깨비처럼 산만하다. 링크를 타고 이리 튀고, 저리튄다. 클릭 한번으로 노래의 클라이막스부터 들을 수도 있고, 비슷한 장르의 아티스트도 검색할 수가 있다.

게다가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너무 쉬워지면서, 지식의 위계가 사라졌다. 초보자용 지식과 전문가용 지식이 구분되지 않게 되었고, 또한 누구나 특정 장르 전반에 대한 조감도를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웹 이전의 시대에는, 문외한이 새로운 장르의 문화에  접근하는 경로가 굉장히 좁고 험했다. 또 학습에는 순서가 있어서, 한 가지를 학습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예컨대 웹이 없던 때 재즈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 재즈에 흥미를 가져서 학습을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처음으로 접한 것이 빌리 할리데이라면, 당분간은 그는 빌리 할리데이의 음악밖에 몰랐을 것이다. 빌리 할리데이의 개인적 생애라던지, 당시 역사라던지, 아니면 그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다음 세대의 뮤지션, 그에 영향을 받은 현대의 뮤지션 등에 대해서는 차차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웹에는 그 모든 정보가 동일 선상에 널려있다. 물론 그것을 이해하는 정도는 정보 수용자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어쨌든 옛날과 같은 수고로움은 없어졌다. 누구나 이제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서 검색 한 번만으로 대강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로 인해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는 더 편리해졌지만, 그 고유의 향기를 많이 잃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웹 이전의 문화는 등산과 같았다. 산의 입구를 지나야 중턱이 나오고, 한참을 올라도 닿지 않을 정상에는 흰 구름이 쌓여있어서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다. 산의 입구부터 중턱, 정상까지 한 눈에 보인다. 그리고 원하는대로 어디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산에 대한 신비감 따위는 요란한 프로펠러 사이로 다 흩어져 버렸다.

대가란, 풍문으로 전해들을 때가 유투브로 검색해서 봤을 때보다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고 공상해보았다




덧붙임
(친구 늘샘이와의 대화와 민노씨네 블로그에서 본 이고잉님 인터뷰가 동기가 되어 쓴 글.)
(혹시 이 분야에 관련해서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덧글

  • egoing 2012/02/05 11:42 # 삭제 답글

    한편으로는 지식이 파편화 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한 레이아웃을 이해하고 있는 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플랫폼이 인터넷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그림의 떡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프로그래밍에 대한 정말 좋으면서 방대한 양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 블로그가 있다고 칠 때, 프로그래밍 초심자가 프로그래밍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 블로그에서는 보여주기가 쉽지 않겠죠. 인터넷이 좀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추려면, 지식의 레이아웃에 대한 접근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글 잘 봤습니다.
  • Derick 2012/02/05 21:41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말그대로 그냥 정보가 여기저기에 널려있을 뿐이니까요. 국내에서 구글보다 네이버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어느 정도 완성된 레이아웃을 제공하기 때문일까요? 저는 최근에야 아이구글 서비스를 알아서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잘 쓰고 있는데, 그 전까지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뭔가 억울하단 기분도 들었네요.

    아, 참. 레이아웃을 말씀하시니 생각나는건데, 생활코딩 정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도 효도코딩으로 스마트폰이랑 컴퓨터 가르쳐드리고 있는데, 학습이 게으르시네요 ㅋㅋ
  • 늘샘 2012/02/07 16:55 # 삭제 답글



    오오, 공감!
    어쩌면 지겹도록 들었던 기술과 과학의 가치중립적인 면일 수도 있다 생각해.
    좋은 점이라면, 정보가 더 공평해졌지. 책 한 권 사기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식의 위계질서가
    무너진 덕에 부정의한 서열도 사라지지 않았나해.

    근데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네 포스팅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다른 면을 생각해보는 것.
    아마 네가 이 부분도 고려했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ㅋㅋ 그래도 걍 씀ㅋ

    아, 그리고 이런 세대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때 더 의미 있는 낭만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하다. 우린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거지. 때로는 빠르게 찾고,
    때로는 천천히 음미하는 것.

    이렇게 말하지만 솔직히 나는 필요 이상으로 빠른 정보를 원할 때가 있는데,
    그래서 금방 질려버리지...
  • Derick 2012/02/07 19:59 #

    느리게/빠르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미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서 느리고 오래된 것은 도태되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된다. 아날로그적인 문화도 디지털 문화라는 큰 자료실 안에 일부로 흡수되어버리지 않을까? 아니면 사라지거나.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인터넷서점/책방, ktx/무궁화, 대형마트/재래시장 이렇게 대칭해놓고 봤을 때, 느리고 오래되고 불편한건 사라져 가잖아. 그런데도 그런 것들을 그리워 하는 건 우리가 어릴적에 경험했던 그런 느린 문화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만약에 이런 "느린 것"들을 어린 시절에 경험하지 못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당연한 세대가 자란다면 아마 그런 그리워하는 마음도 사라지겠지? 그런 문화에 대한 애착이 사라짐과 동시에 느린 문화도 도태되지 않을까... 너무 추상적으로 써서 전달이 안되는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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