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은 어렵다./매그넘 사진전 후기 #일기


한 때 웹에서 "에이즈는 정말 실존하는 병인가?"라고 묻는 음모론자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참으로 황당한 의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에이즈 환자를 화면으로도 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물론 AIDS라는 글자로는 본 적이 있다. 헌데 그게 어떤 병인지 머리 속에 분명하게 감각적으로 떠올릴 수는 없다. 에이즈 환자들은 정말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구나. 그래서 지난 4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생명의 기적(Access to Life)' 사진전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문구는 나에게 또렷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전시회를 통해 매그넘은 실제로 현장의 고통을 찍을 수 있다면, 현장의 고통이 중단될 수 있다는 기록의 도덕적 힘에 대한 신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이 사진전은 '생명의 기적'이라는 제목을 달고 열린 만큼, '우리 인류가 힘을 합친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사진이 보여주는 AIDS의 그림자는 그런 낙관론을 덮고도 남을 만큼 어둡다. 사진 속 병자들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디를 바라보는 지 알수도 없이 초점도 없고, 사진이 찍히고 있는데에도 의식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무력감이 그 사람을 통째로 삼키고 거죽만 뱉아내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이 정도까지나 참혹한 인간의 무력감을 보는 것은 슬프다. 마치 코가 한 가지 냄새를 오래 맡으면 감각할 수 없게 되듯이, 우리는 수많은 슬픔들을 숫자로 접하고, 그것에 무감해진다. 기아, 전쟁, 납치, 폭력... 셀 수도 없는 사건들을 텔레비젼 채널 넘기듯 외면해버린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눈동자가 지니는 이미지는 그런 무감증을 깨고 가슴 깊숙이를 찌를 만큼 강력하다. 죽음을 이겨낸 사람들의 사진도 많지만, 결국 가슴 속에 담아가는 것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묘지 사진으로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편 그런 무력감 뿐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 자체도 불편하기가 그지 없었다. 돈을 내고 그 사람들의 눈동자를 '감상'하고 있다는 그 자리. 사진 옆에는 '감상포인트' 가 조그맣게 붙어있었는데, 피사체들의 눈에 보이는 수많은 흔들림과 무거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 옆에 누군가가 감상 포인트를 붙여 놓는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보고 싶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자리에 있는 포토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인도 소녀의 얼굴 옆에 서서 브이자를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우습지도 않은 잔인한 코메디였다. 나도 처음으로 사진전을 간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배경이 되어버린 인도 소녀의 사연을 아는 사람이 내 사진을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찝찝하다. 사진전을 여는 주최 측에서 사진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을 했더라면,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줄일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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